What other travelers are saying about 이시부타이 고분(석실분)
아스카데라 가까운 낮은 구릉 위에 집채만한 커다란 바위가 처음엔 한국의 커다란 고인돌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이시부타이(石舞臺)입니다. 달 밝은 밤에 여우들이 여인으로 변해 춤을 췄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이름이었습니다.
석무대 아래쪽의 거대한 석실로 유추할 때, 야마토 정권의 실세였던 소가노 우마코의 묘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디.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인 석무대 주위의 풍경은 안온하게 느껴져서 아스카는 그야말로 충청도 부여지방의 냄새를 일본에서 느낄 수 있는 친근감을 갖게 됩니다.
석무대(石舞臺, 이시부타이)는 다카마쓰 고분에서 약 4km정도 떨어진 산아래 위치인데 소가노 우마코의 묘라고 전해지며 낮은 구릉위에 집채만 한 거대한 자연석 두개가 이마를 맞대고 있는 형상으로 그 율동적인 모습때문에 돌이 춤추는 것 같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러나 이것은 본래 거대한 봉분에 덮혀있던 흙이 벗겨지면서 무덤 석실 덮개돌이 통으로 들어난 것이다. 100년 세도의 소가씨 집안이 멸망하자 그동안 원한이 쌓였던 사람들이 봉분 흙을 긁어대며 화풀이를 하여 이렇게 무덤 지붕돌이 드러났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원래 봉분은 한변이 50m인 거대한 방분(方墳)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석무대 고분은 횡혈식 석실을 지닌 방형고분이며 축조는 7세기 초기 무렵으로 추정되고 피장자는 소가노 우마코로 추정되고 있다. 현실의 길이는 7.7m 폭 3.5m 높이 4.7m의 규모이며 크고 작은 화강암 30여개가 사용되었고 천정석의 무게는 북쪽 거석이 약 64t, 남쪽 거석이 약 77t, 총중량 약 2,300t이나 되는 거대한 고분이다. 석실은 개방되어 들어가 볼 수 있는데 천장을 올려다 보면 맞댄 덮개돌 사이로 하늘이 보여 어둡지 않고 마치 천장이 높은 방에 들어간 기분이 든다. 이런 형태는 백제의 가장 일반적인 묘제였기 때문에 대개 도래인의 무덤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깜짝 놀랄 수 밖에 없다. 이거 완전한 무덤이었을 때 규모가 얼마나 컸을까? 왕도 아니고 권신 소가노 우마코의 무덤이 이정도라니... 소가노 우마코는 자신의 아들 손자 대에서 가문이 멸문되고 자신의 무덤이 훼손 되리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광장한 돌무더기 아래에서 눈을 감고 긴박했던 당시의 정쟁(政争)을 떠올려 본다. 일본 사람들은 도래인들과 관련된 유적과 역사적 사건들을 애써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고대 일본의 역사는 한국지역의 나라를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냥 인정 할 것은 인정하고 가자^^